보험법상 고지의무와 통지의무의 경합
최근 수행한 보험금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봄. (적당한 각색)
문제된 쟁점에 관하여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은 사건이어서 매우 흥미로움. 망인이 오토바이 운행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보험에 가입하였다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오토바이를 운행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임. 망인의 유가족은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을 청구하였으나, 보험사로부터 지급을 거절당하자 소송을 제기함.
유가족(원고)은 망인의 오토바이 운행 사실은 계약 체결 전 고지의무 대상에 불과하고 계약 체결 후의 사정은 아니므로 상법 제652조가 적용되지 않고, 계약 체결일로부터 3년이 경과한 후 망인이 사망하였으므로 상법 제651조에 정한 해지권도 소멸하였다고 주장함.
보험법상 고지의무와 통지의무
1. 고지의무 (상법 제651조)
약관에 정한 계약 전 알릴 의무 규정과 상통함.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는 보험계약 체결 시 보험사에게 중요한 사항을 고지해야 함. 만약 고의 또는 중과실로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거나 부실 고지를 한 경우, 보험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 내, 계약 체결일로부터 3년 내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음. 이때 해지권의 행사기간은 통상 제척기간으로 해석되며, 보험자가 위 행사기간 내 해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해지권은 소멸.
중요한 사항이란 객관적으로 보험자가 그 사실을 안다면 그 계약을 체결하지 않든가 적어도 동일 조건으로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항을 의미함.
2. 통지의무 (상법 제652조)
약관에 정한 계약 후 알릴 의무 규정과 상통함.
상법 제652조 제1항은 ‘보험기간 중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을 안 때에는 지체 없이 보험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함. 이때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이란 보험계약의 체결 당시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보험자가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그 보험료로는 보험을 인수하지 않았을 것으로 인정되는 사실을 의미함.
쟁점 - 고지의무와 통지의무의 관계
문제 되는 쟁점
보험자가 계약 체결 당시의 사정에 관하여 통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오토바이 운전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채로 보험에 가입하였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오토바이를 운전하다가 사망하였다면, 피보험자는 보험자를 상대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 판결의 등장
보험계약 체결 당시 이미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있었다면 고지의무만 문제 될 뿐 통지의무는 문제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상법 제652조에 정한 통지의무는 보험계약 '후' 발생한 사정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019. 5. 경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보험계약 체결 후에도 계속하여 오토바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상법 제651조가 적용되지 아니하고 상법 제652조가 적용된다는 내용의 판결('문제 판결')을 선고하였음.
당시 피보험자인 원고는 망인이 생전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이미 오토바이를 계속적으로 운전하고 있었고 보험계약 체결 후 3년이 경과하였으므로 보험자는 상법 제651조의 해지권을 행사할 수 없고, 오토바이의 계속적 운전 사실이 보험기간 체결 후 사정 변경으로 인하여 새롭게 변경되거나 증가된 위험으로 볼 수 없으므로 상법 제652조도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함.
이에 재판부는 상법 제652조가 적용된다고 판단하면서 피고 보험사의 손을 들어줌. 망인이 보험 가입 이후에도 오토바이를 계속 사용하였고 해당 사실을 보험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보험자로서는 보험계약자의 의무 위반으로 보험사고를 높이는 위험을 알지 못한 상태에 빠진 것이고, 그러한 상태에서 피보험자가 이륜자동차를 계속적으로 운전하여 객관적으로 위험이 높아진 결과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5. 17. 선고 2017나86240 판결 참조).
또한 위 판결은 "원고 주장을 받아들여 <보험기간 중에 오토바이를 계속적으로 사용하게 된 경우 통지의무를 부담한다>라는 규정을 <보험기간 이전부터 이륜자동차를 계속적으로 사용하게 된 경우 통지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보험기간의 통지의무 외에 이에 앞선 체약 과정에서 고지의무까지 위반한 보험계약자가 통지의무 위반에 그친 보험계약자에 비하여 오히려 의무 위반의 제재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부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라고 지적함.
위 판결이 선고된 후 업계에서 제법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토바이 소유 및 운행 사실을 숨기고 보험에 가입하고, 가입 후에도 오토바이를 운전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 보험사에서는 위 판결을 보험금 지급 거절의 유력한 논거로 활용했음.
위 판결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음. 왜냐하면 오토바이 운행 사실을 위험의 '증가' 혹은 '변경'으로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 상법 제652조는 사정변경의 법리를 반영하여 입법된 것인데, 이미 보험계약 체결 이전부터 오토바이를 운행하였다면, 사정변경으로 볼만한 '현저한 위험의 증거 또는 변경'이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법 적용으로 보였음. (오히려 동일한 위험이 계속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지?)
새로운 판결 선고 - 위 문제 판결 논리를 배척한 판결이 선고됨
그러다 작년 7월 같은 법원에서 위 문제 판결 논리를 배척한 판결('새로운 판결')이 선고되었음(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7. 20.선고 2022가단5317676 판결). 물론 위 새로운 판결은 보험계약자가 직무를 고지하지 않고 보험에 가입한 사안에 대한 것으로서, 오토바이 운전한 위 문제 판결에 직결되는 것은 아님.
다만, 위 새로운 판결은 상법 제651조의 해지권 행사기간을 둔 취지를 살피고, 위 해지권 행사기간이 경과한 후에도 상법 제652조의 통지의무에 따른 해지를 인정한다면 상법 제651조의 해지권 행사 제척기간을 실질적으로 형해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함.
정리
위 판결뿐 아니라 주석서 기타 교과서 등을 종합하여 논리를 구성한 뒤 서면을 작성하여 제출하였음. 만약 패소한다면 대법원까지도 가서 다투어볼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함. 하급심 판결이라고 하더라도 보험사에서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만한 유력한 근거로 활용됨. 향후 법원이 어떠한 판결을 선고하느냐에 따라 많은 유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임.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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