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물책임 - 고양이가 하이라이트 버튼을 눌러 화재가 발생한 경우 (1)
아파트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는 소방관 출동 후 금세 진압되었지만, 소훼, 그을음, 소방수 등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액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국과수가 발화점으로 추정되는 물체들을 수거해 감식한 결과, 커피머신 내부 전선에서 전기적 용융흔이 관찰되었고 이에 국과수는 커피머신을 발화점으로 특정했습니다.
보험사는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뒤, 제조사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습니다. 보험사는 국과수의 감정서를 주된 증거로 삼아 커피머신 자체 결함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으므로 제조사는 제조물책임을 부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맞서 저는 피고 제조사를 대리하여 방어했습니다. 화재는 고양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커피머신의 결함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에 관한 원고의 입증이 부족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법원은 원고 보험사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2024. 5. 31. 선고 2023가단257740 판결)
판결문에 설시된 판단 부분은 매우 간략하지만, 이 사건에서 오갔던 공방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아래에서 사건의 쟁점 및 상호 간의 공방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현행 제조물책임법 제3조의2 및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제품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 그 제품의 결함을 이유로 제조업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달리 제조업자 측에서 그 사고가 제품의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것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소비자 측에서 그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하였다는 점과 그 사고가 어떤 자의 과실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정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충분합니다(대법원 2004. 3. 12. 선고 2003다16771 판결, 대법원 2006. 3. 10. 선고 2005다31361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원고 보험사가 피고 제조사에 제조물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① 피고들이 제조물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해당 제조물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용되는 상태였다는 사실, ② 이 사건 화재가 피고가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영역에서 발생하였다는 사실, ③ 이 사건 화재가 어떤 자의 과실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원고 보험사가 국과수 감정서를 바탕으로 피고 제조사의 제조물책임을 주장할 때까지만 해도, 원고 보험사가 우세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국과수가 현장에서 직접 제조물을 수거 감식한 뒤 제조물 내부에서 단락흔까지 발견하여 이를 발화점으로 특정했다면, 이를 뒤집을만한 강력한 증거가 없는 한 피고 제조사는 책임을 져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고 제조사에게는 소방서의 화재현장조사서가 있었습니다. 화재현장조사서에는 화재 현장에서 고양이가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기재되어 있었고, 하이라이트 위에 고양이 사료통이 놓여 있는 모습 및 사료가 흩어져 있는 모습이 촬영된 사진이 담겨 있었습니다. 원고 보험사가 제출한 국과수 감정서에는 소방서의 화재현장조사서에 담긴 내용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원고 보험사는 '하이라이트(인덕션)와 무관하게 이 사건 제조물 내부 커넥터의 결함(절연 미흡)으로 화재 발생이 시작되었으며, 피고의 배타적 지배영역 하에 있는 이 사건 제조물의 내부 결함이 없었다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원고 보험사는 그 근거로 소방서의 화재현장조사서가 오류를 범했고, 하이라이트 자체에는 별다른 손상이 없었으며, 이 사건 화재 당시 하이라이트 스위치가 눌러진 상태였다고 볼 수 있는 아무런 자료도 없고, 만약 인덕션에서 시작된 외부에서의 연소로 이 사건 제조물이 발화된 것이라면 같은 정도 손상된 전해수기 내부에서 발견되지 않은 전기적 특이점이 유독 이 사건 제조물의 내부 커넥터에서만 식별되었을 수는 없다는 점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 제조사는 커피머신 내부에서 단락흔이 관찰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2차흔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 화재 당시 건물 소유자 ㅇㅇㅇ가 ① 외출 당시 이 사건 하이라이트에 콘센트를 인가한 사실 ② 이 사건 하이라이트 상부에 이 사건 제조물 또는 불상의 물체를 놓아둔 사실, ③ 이 사건 하이라이트 주변에 고양이 사료통을 둔 사실 등에 비추어, 건물 소유자는 고양이로 하여금 ㉮ 이 사건 하이라이트의 전원을 눌러 ㉯ 전도, 복사열을 발생시켜 ㉰ 이 사건 제조물을 포함한 주변 물체를 가열하여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을 방치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화재가 발생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였습니다.
나아가 피고 제조사는 ① 해당 제조물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② 이 사건 화재가 피고가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영역에서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 제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제조물의 결함 및 이 사건 화재와의 인과관계가 제조물 책임법 제3조의2 에 따라 추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 제조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판결이 선고된 후, 원고 보험사가 항소하지 않아 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원고 보험사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법안전감정서를 증거로 제출했지만, 법안전감정서의 허점을 지적하여 피고 제조사를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변호사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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