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전기레인지 버튼을 눌러 화재가 났다면? 제조사 구상금 청구 방어사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커피머신을 발화점으로 지목했더라도, 제조사의 제품 결함이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화재 당시 제품이 정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는지, 다른 발화 가능성은 없는지, 감정서가 현장자료를 충분히 반영했는지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사건 결과
보험사는 커피머신 제조사를 상대로 화재보험금 상당의 구상금을 청구했습니다. 저는 제조사를 대리해 국과수 감정서가 반영하지 않은 현장자료와 다른 발화 가능성을 제시했고, 법원은 보험사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습니다. 보험사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됐습니다.
사건을 한눈에 보기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그을음과 소방수 등으로 상당한 손해가 생겼습니다.
국과수는 커피머신 내부 전선에서 전기적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발화점으로 보았습니다.
보험사는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뒤 커피머신 제조사를 상대로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제조사 측은 고양이가 전기레인지 버튼을 눌러 주변 물체가 가열됐을 가능성과 국과수 감정의 한계를 주장했습니다.
최근 선고된 하급심 판결(서울서부지방법원 2024. 5. 31. 선고 2023가단257740 판결, 이하 ‘대상판결’) 사안에서는 법원이 보험사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보험사에 유리해 보였던 국과수 감정서
보험사는 국과수 감정서를 주된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현장에서 수거한 커피머신 내부 전선에서 전기적 용융흔이 발견됐고, 국과수가 커피머신을 발화점으로 특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감정서만 보면 제품 내부의 전기적 결함 때문에 불이 난 것으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제조사로서는 단순히 “제품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제조물책임에서 소비자가 증명해야 하는 것
제품 내부의 결함은 소비자가 직접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조물책임법은 일정한 요건 아래 결함과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추정이 적용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사정이 증명돼야 합니다.
제품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었는지
사고가 제조업자의 지배영역에 있는 원인으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지
사용자나 제3자의 과실 등 다른 원인 없이 통상 발생하기 어려운 사고인지
따라서 제품 주변의 사용환경이나 다른 발화 가능성이 확인된다면, 내부에서 전기적 흔적이 발견됐다는 사실만으로 제조물의 결함을 단정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판단을 바꾼 자료: 소방서 화재현장조사서
국과수 감정서와 별도로 소방서가 작성한 화재현장조사서가 있었습니다. 이 자료에는 화재 현장에 고양이가 있었고, 전기레인지 위에 물체가 놓여 있었으며, 주변에 고양이 사료통과 흩어진 사료가 촬영된 사진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국과수 감정서에는 이러한 현장 상황이 반영돼 있지 않았습니다. 이에 제조사 측에서는 다음과 같은 다른 화재 경로를 제시했습니다.
고양이가 전기레인지의 터치식 전원 버튼을 눌렀을 가능성
전원이 켜진 전기레인지의 열로 위에 놓인 물체가 가열됐을 가능성
외부 화재로 커피머신이 연소되는 과정에서 내부 전선에 2차적인 전기 흔적이 생겼을 가능성
중요한 점은 고양이가 실제로 버튼을 누르는 장면을 직접 증명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보험사가 주장한 ‘제품 내부 결함’ 외에 배제하기 어려운 다른 발화 가능성이 있었고, 감정서가 그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국과수 감정서를 어떻게 반박했나?
감정기관의 결론 자체를 막연히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서가 전제로 삼은 자료와 누락한 자료를 비교하고, 발견된 전기적 흔적이 최초 발화 원인인지 외부 화재로 생긴 2차 흔적인지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이 살핀 세 가지 사정
① 제품이 정상적으로 사용됐다고 단정할 수 없고
② 화재 원인이 제조사의 배타적 지배영역에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③ 사용자 환경에서 비롯된 다른 발화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았으므로
제품 결함과 화재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법원의 판단과 결과
법원은 제조사 측 주장을 받아들여 보험사의 구상금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후 보험사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이 사건은 공신력 있는 감정서가 제출된 사건에서도 감정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현장조사서·사진·제품의 사용상태와 대체 가능한 사고원인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런 경우에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보험사로부터 제조물책임 구상금 청구를 받은 경우, 제품이 이미 폐기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국과수 감정 결과와 소방서 조사내용이 다른 경우에는 초기에 자료를 확보해야 합니다. 화재 현장은 복구 과정에서 빠르게 달라지므로 사진과 제품의 보존 상태가 소송 결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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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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